많이 사함받은 자는 많이 사랑하느니라

By | April 8, 2021

3/15/20 주일설교 말씀입니다

눅7:36~50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37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45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이중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의 추하고 악한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는 말씀을 흘려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절대로 나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면의 인격이 있습니다. 존 샌포드는 그것을 내면의 원수라고 불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서입니다. 인간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나의 죄를 아무런 대가 없이 용서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자기 의를 쌓게 됩니다. 율법을 지켜서 대가를 받으려합니다. 나는 구제불능한 인간이므로 나를 사하여주시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이것을 좀 수정하고 싶습니다. 죄의 책임으로부터는 자유하게 되지만 나의 실체를 볼 때 나타나는 죄책감은 없어지질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게 하는 죄책감인가 아니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죄책감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 중의 하나를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죄책감은 정말 죽음의 고통까지 몰고 가고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희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첫째 선행을 하려 합니다. 선행으로 플러스 마이너스하여 상쇄시키려 합니다. 둘째는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열심히 지켜 죄책감을 없애려 합니다. 이런 경우에 결국 자기 의만 쌓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만 됩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바에 의하면, 율법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사람이 절대 지킬 수 없다는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노력으로 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인간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다 사함 받으려면 내가 의식하고 지었던 죄들, 이해하고 인식하는 죄들 뿐만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의 잠재력, 모든 어두움과 복음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불신 등의 여러 가지 내면의 원수를 나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내면의 어둡고 악하고 추한 존재는 전혀 자신과 상관없다고 여기는 바리새인을 위선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두를 인정하는 여인은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뒤로 하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어떻게? 내면의 원수를 나라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나 안에 있는 천국’이란 책을 추천합니다.

인생의 풍랑을 거치고 소망의 항구로 도달하는 것은 이 험한 인생에서 고난과 시련과 죄가 가득한 이 곳에서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 인생의 항해속에서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죄를 안 짓고 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단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하려는 조건 그 목적을 가졌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나, 나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원수를 나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십자가에 서야 합니다. 매일 십자가 앞에 나아가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죽고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에디터 – {율법주의의 해악} 3편의 설교 in 듣는 복음, 함께 들으시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