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광야란 어떤 곳인가?

By | February 9, 2020
막 1:9-13
선한 능력으로 – 본 회퍼, 찬양 들으시며 예배의 자리로 나오세요.

초대의 글
선한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 쌓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놀라웁게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 옛것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르지만, 오, 주님 내몰려 버린 우리의 영혼에게 당신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을 주십시오.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놀라웁게 보호받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두움 속으로 가져오신 그 초들이 오늘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다시 하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압니다. 당신의 빛이 밤을 비추고 있음을.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놀라웁게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9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 1:9-13

본 회퍼의 기도문 읽기

1945년 4월 9일, 독일 동남부 Flossenburg 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39세의 꽃다운 생을 마감한 위대한 그리스도인 디트리히 본 훼퍼의 이야기는 기리기리 우리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 이 기도는 그가 처형되기 전날 일기에 쓴 것으로 남아있다. 처형되던 날 독일 동남부의 아름다운 도시근교 이 수용소 뒷산은 맑은 날씨에 봄 향기 가득한 야생화가 피어나고 나무들은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향내를 발하고 꿀벌이 웅웅거리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거기서 그는 옷을 다 벗기운 채 무릎을 꿇고 39년 동안 사랑하고 섬긴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당당하게 돌계단을 올라간 그는 피아노 줄로 목을 매다는 교수형으로 불과 몇 분 만에 운명 하고 영원의 빛 속으로 들어갔다.

본 회퍼의 일생 – 한글 위키 / Crossway link in English

나는 굳게 믿는다. 이 분이 남긴 탁월한 저서와 그의 아름답고 거룩한 삶의 이야기가 후대의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과 더불어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그가 생명을 드려 받은 고난은 우리가 채 다 알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선물로 갔으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에게 지어지는 각양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렇게 믿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39세의 나이에 의롭게, 그러나 처참한 처형으로 요절당한 그의 운명과/ 하나님은 언제나 선한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그의 고백이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핵심이다.

광야曠野 wilderness 의 역사적, 영적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은 아담과 이스라엘의 실패를 완전하게 반전反轉 reverse, undo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광야 40일의 삶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생활의 실패를 반전시킨 것임을 알도록 하자. 민수기 13,14장의 이야기. 민 14:26-34 읽기—>신 8:1-20절 읽기.

Q.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가?
400년 동안의 애굽의 노예생활, 이스라엘의 옛 사람, 옛 자아는 홍해를 통과함으로 죽고 새 사람으로 광야로 들어감.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1-4. *출 17:1-7절 기사 참조.

그리고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40년을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보호, 치유, 공급, 교훈, 계시, 약속을 생생하게 경험한 인류역사상 유일한 민족이었다.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 von Guten Machten 으로 보호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스라엘은 그러한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신 능력과 뜻을 벗어나 우상숭배로 하나님을 능멸하고 버렸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언제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민 14: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통해 당신의 선하신 능력을 보여주심으로 영원토록 하나님만을 믿고 순종하는 친 백성으로 만드시려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실패하였고 이제 이스라엘의 메시아 이신 예수께서 40일의 광야생활동안 과거 이스라엘의 실패를 완전하게 반전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광야란 어떤 곳(것)인가?
예수를 믿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삶 자체가 광야의 삶이라는 진리를 꼭 붙잡도록 하자. 광야가 주는 즉각적인 상징성은 위험과 위협, 고달픔과 두려움이다. 물리적인 광야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곳이며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협이 존재한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상황적 광야’ 라는 언어를 썼다. 세상에서 자라고 성장했고 교육을 받고 직업을 얻고 결혼, 자녀, 집과 차 그리고 중요하고 잡다한 일들에 분요하게 살다가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 세월 중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신체, 감정, 사고, 친구 혹은 가족관계, 생계 등에 이해할 수 없는 격변, 손해, 붕괴, 상실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인생길을 광야라고 부르기도 하고 인생의 모진 굴곡과 고단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비를 잘 이겨낸 사람은 칭송을 받곤 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광야란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을 경험하는 곳, 그러한 삶이라는 진리를 깊이 새기도록 하자. 광야는 분명 위험하고 죽음을 직면하는 곳이지만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와 삶의 특별한 소중함에 직면하는 곳이기도 하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유진 피터슨 읽기 막 1:13의 말미에 천사들이 수종 들더라 라는 말씀에 주목하도록 하자! 사단의 시험과 들짐승으로 표현되는 위험과 더불어,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밤낮으로 그를 보호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상황적 광야가 될 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할 것이다. 하나는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이다. 우울과 침체에 빠진 채로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나쁜 상황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좋은 날이 오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에 들어와 있는 광야에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는 것이다. 힘들고 괴롭지만 그 상황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역사하고 있음을 믿는 것이다!

본 훼퍼의 시를 다시 한 번 떠올리자. 그는 인생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었다. 그는 들짐승 같은 나치 독일의 사악함에 치어 억울하고 참혹한 처형을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놀라웁게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어두움 속으로 가져오신 그 초들이 오늘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고 있다고, 그리고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신다고,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신다고! 물론 동시에 옛 것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오, 주님 내몰려 버린 우리의 영혼에게 당신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그러면서 반복해서 선한 능력에 우리는 너무 잘놀라웁게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신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신다고 고백하였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의 것이 되도록 기도하며 우리 삶의 최고의 소원으로 삼도록 하자.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인생의 광야, 바로 지금 여기에 here and now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이 밤이나 아침이나 임하고 있으며 너무나 잘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도록 하자. 이것은 거의 인지적 부조화認知的 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 를 견디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을 바로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히 11:1 다.

인생의 광야에서 위험과 위협, 상실과 실패, 버림받음과 붕괴되나 관계들 속에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너무나 잘 보호받고 있으며 나를 덮는 어두움 속에 촛불을 갖고 오셨다고 말하며 그분이 밤이나 아침이나 함계 계심으로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하자. 예수님이 이러한 일에 승리하셨다. 그분이 광야에 계실 때 우리는 영적으로 그분 안에 있었다. 그 분과 함께 승리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실존實存속에서, 여전히 그분과 함께 실존적 광야를 지나고 있다. 이를 인하여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만을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고 섬기는 새 사람 새로운 피조물 이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릴 때 우리 부활의 몸은 그러한 새로운 자아를 지닌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다.

…2월 9일 손희영 목사님과 함께 하는 예배 올립니다.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하는 한 해 가운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