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예배 1

By | July 3, 2020

** 일상 속의 예배 – 소주제 강의로 읽는 설교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
해마다 첫 주가 되면 그 해에 우리가 지향할 목표에 대해 말씀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로마서 11장에 이르기 까지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모든 원리에 대해 서술했습니다. 죄에 빠져 멸망하게 된 인간의 절망적 상황, 그러한 무가치한 패역한 죄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구원의 은혜, 신자의 삶을 영원에 이르기까지 보장하시는 긍휼과 자비의 무궁함을 통하여 복음의 영광스러움과 그 안에 있는 신자들의 부요한 신분을 말하였습니다. 이제 이와같은 은혜를 입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까?
답변은 간결합니다. “너희 몸을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려라!” 이것입니다. 그리고 해설을 덧붙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너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영적인 예배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예배라는 것과 산제물이 어떻게 상응하는 것일까요?

산 제물이란?
구약의 희생제물(제사)는 소나 양을 죽여서 피를 흘리고 그 피를 하나님의 지성소에 뿌리며 또 동물을 태워서 그 향연이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실 일에 대한 예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천년전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제사는 영원하고 단번에 이루어진 것으로 다시 반복되어서도 안되고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또다시 어떤 희생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드릴 제물제사는 더 이상 속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원한 효력이 있어 우리의 일생에 걸친 범과를 대속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탯산보도 높다해도 보혈의 권능이 너무나 크시므로 온전히 사하실 수 있습니다. 바다보다 깊다해도 보혈의 놀라운 권능은 그 모든 죄악을 도말하십니다.

우리의 제물은 이제, 죄사함받은 신자로서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시는 삶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제사입니다. 동물을 죽여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신자의 살아있는 인생, 삶 전체를 통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절의 말씀을 축약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생활예배를 올바르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생활예배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예배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지요.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영광이란 신의 속성이 계시된 상태를 말합니다.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심이 드러날 때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빌립보 2장 9절 이하를 보십시다.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그래서 예배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 시인하는 것에 있습니다.
(계시록 끝에 나오는 또 하나의 예배언어-Lord, Come!-구원의 3 시제가 만나는 것이 예배.)
이것을 정점으로 해서 광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우리는 그 영광을 보고 주께 영광을 돌리며 기도하며 우리를 헌신하는 몸짓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성례를 비롯한 예배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주(主)시라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예배입니다. 주일에 온 회중이 만나서 한자리에서 드리는 회중예배 말입니다. 간혹 주일 저녁에도, 수요일저녁에도 그렇게 합니다. 목장에서도 순서를 약간 줄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는 그것을 더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른바 생활예배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예배드리는 것,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나머지 6일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간혹 예배시에 대표기도하는 것을 들으면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일주일 동안 세상에 나가 온갖 죄를 짓고 불순종하고 살다가 오늘 거룩한 성일을 맞이하야 주의 성전에 나와 제단을 쌓습니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마치 주일 예배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아 일주일을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버티다가 거의 그로기 직전까지 되어서 예배당에 들어와서 새힘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분은 신앙은 좋은데, 신앙생활은 잘하는데 사회생활은 엉망이야.’ 맞는 말입니까? 이런 표현의 이면에는 신앙생활이란 것을 ‘예배당 중심의 활동’에 국한시키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일주일 내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늘 드려지는 ‘생활예배의 연속’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은 가정예배도 드리고 직장에서 신우회라는 것을 조직해서 정기적으로 예배도 드리고 그럽니다. 더 성실한 사람들은 매일 아침 QT를 하면서 개인적인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너무나 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서 더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기가 질릴 것입니다. 그런것도 아직 못하는데 더 넘어가라니요. 그러나 이것은 단계의 문제가 아니고 의식의 문제이므로 잘 새겨 듣고 실천하기 바랍니다.

생활예배의 기본적 정의
예배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주인되심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가 되십니다. (엡 1:22)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마 28:19)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 나라의 합법적인 왕이시며 소유주이십니다. 인간사회에서 정치과 경제와 사회와 문화 모든 영역의 주가 되십니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주권이 제외되는 곳은 없는 것입니다.

신자의 가정생활이나 직장이나 학업이나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분은 주가 되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그렇게 인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온전하게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활예배의, 그리고 진정한 모든 예배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