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29일

By | April 7, 2025

2009년 4월에 전북 익산을 방문한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오오우치 기미오오와 사카코 부부였다. 이들은 백제 성왕의 아들 임성태 자의 45대 손이라 했는데 1,400년전 백제의 국운이 기울어갈 무렵 일본으로 망명한 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사당을 지키고 있었는데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성왕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기 위해서 내한하였다고 했다. 그 가문은 중세 일본의 대영주였으며 막부시대에도 귀족집안이었다고 했다. 임성태자가 1389년 일본으로 건너간 일은 역사에도 기록이 있는데 이들 오오우치 씨 가문은 백제왕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오오우치 기미오 씨는 아버지로부터 족보를 물려받을 때 자세한 가문의 내막을 들었으며 그 때부터 임성태자을 모신 사당을 정성스레 모셨다고 했다. 익산을 방문한 그는 성왕묘소를 참배하고 익산고등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백제왕이 후손임이 자랑스럽고 자신의 뿌리를 확실히 안 후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 안정감,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학생들도 자못 진지한 얼굴들을 하고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어지간히 족보에 대해 열심인 가문이 많고 예를 들면 퇴계선생의 후손을 선조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대단하고 제를 올릴 때면 온 마을 사람들의 축제의 장이 된다고 한다. 족보는 꼭 조상이 훌륭한 인물이었다는 것 말고도 자신의 뿌리를 알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의 안정감을 느끼고 무언가 자신이 이 세상에 그저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 무언가 가치있는 존재라고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수십년전만 해도 제삿날이 되면 고모, 숙모들이 한데 모여 놋그릇을 닦고 나물거리를 손질하면서 밤늦까지 조상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우면 졸음이 쏟아지는 눈두덩을 비비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지고 자신을 둘러싼 안전한 울타리를 느끼는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
성경에는 여러번 족보가 등장한다. 창세기부터 아담의 후예의 계보가 등장하고 나중에 애굽으로 건너가는 야곱 일가의 이름들이 소개된다. 민수기에도 출애급한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나오고 여호수아서에 유다자손의 이름이 자세히 언급된다. 역대기는 아예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 족속의 족보, 특히 열두지파의 족보를 상세히 열거한다. 그 외에도 제사장 가문의 족보등이 나오고 하여간 좀 지루할 정도로 족보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왜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족보를 배워야 하는가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족보는 그것이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인 것처럼 틈만 나면 소개된다. 마태 1장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예수의 족보로 시작한다….맨 마지막에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떠니 마라에게서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가 나니라. 마 1:1—6
모든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히 이 족보를 읽을 때 왜 이게 필요한가? 혹 나와 무슨계가 있단 말인가? 영적의미는 무엇인가? 그게 나의 신앙적 실존에 중요한 일인가? 등의 질문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를 짚도록 하자. 우리에게 이 족보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약속이 율법을 먼저 수여받은 자들에게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유대인과 모든 이방인)의 조상이니라. 21세기에 사는 우리도 성경말씀을 배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은 단지 그 약속을 믿은 것, 아브라함이 자녀를 주시마고 하신 약속을
믿었떤 그 믿음,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는 향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스라엘에 입양이 된 것이다. 입양을 떨뜨럼하고 감추고 싶은 일이 아니라 촉망받는 훌륭한 청년을 유수한 귀족가문에 입양시켜 그 가문의 모든 재산, 족보, 명예, 정치권력 등을 다 상속받는 매우 당당하고 영예로운 그리스로마 전통안에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나사렛 예수는 아버지 요셉의 피가 한방울도 섞이지 않았다.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이 아니었다. 마리아가 낳고 요셉을 아버지로 있던 상태에서 요셉에게 입양된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다윗 왕가에 입양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이유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 선택에 의해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세우시고 구원역사를 펼쳐가실 때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 출 애굽, 광야생활…가나안 입경 이후 사사시대, 순종과 불순종을 밥먹듯 반복하는 완악한 이 백성임에도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로마서에도 구원을 말할때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나중은 헬라인에게로다‘ 해서 항상 유대인의 구원의 우선순위를 말한다.
말하자면 유대인을 마득히 몰랐고 이스라엘 역사는 한 대목도 몰랐으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며 그것은 유대인의 족보에 입양이 된 것이다. 이것은 그냥 비유로 하는 말도 아니고 지나가는 말로 한번 해보는 말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의 족보에 올려지며 그들과 영적 후손이 된 것니다, 참감람나무에 젖붙임당한 우리 돌감람나무 가지가 참감람나무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과 같다. 서문의 족보이야기로 돌아간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생활떄도
그 이후에도, 광야생활과 가나안의 삶에서도 족보를 구전으로 외어 흠송하면서 온 마을이 함께 찬송하며 하나님의 선민된 자부심과 자랑을 누렸다. 예수님도 들어있는 유대인의 족보에 내 이름도 올라 있다면,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고 열방에 나아가 열방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하나님되심, 그 크신 능력과 지혜 사랑으로의 돌보심을 전파할 막중한 사명과 책무를 지고 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우리는 육체의 족보와 함께 이제 영적 족보를 찾은 셈인데 앞으로 이 족보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배우고 부를 때 점점 친숙해 지고 뗄레야 뗼 수 없는 영원하 공존할 가족이라는 개념을 진지하게 여기고 연습해서 육체의 족보를 보는 것 이상으로 익숙하고 친밀하며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자신의 영적위치, 반석위에 놓은 안정감, 하나님의 피할 바위에 숨는 안도감, 바위위에 높이 세우시는 영예와 같은 것을 누리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깊은 정서적 안정감, 자신감, 이스라엘 민족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깊이 하도록 할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나오는 사람이름들을 장삼이사, 필부필부 그냥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지 말고 멀게 가깝에 촌수가 닿아있는 우리 족속이요 그리스도께도 이어지는 왕의 족보임을 알고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합시다. 이 세상의 삶이 팍팍하고 이 세상의 족보가 날 위로해주지 못해도 나의 이 영적 족보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나의 안식처요 안전과 행복을 주는 베이스켐프가 되지 않을까? 사순절에 이 내용을 깊이 묵상실천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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