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18일

By | April 7, 2025
  1. 3. 25 사순절 18째 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노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17절

사순절은 우리의 죄에 대한 참회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숙고하는 절기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은 세상에서의 용서와 달라도 너무 다르고 그 크기와 깊이를 이루다 말하기 힘듭니다. 그것을 말하는 본문은 하나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라는 것이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깊고 신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됩니다. 신실하심 faithfulness (옛 번역에는 미쁘시다, 요즘은 잘 안 쓰지만 어감이 폭 좋습니다) 신실하다는 것은 한 번 맺어진 관계에 충분히 끝까지 충실한 것을 말합니다.세상에서 의리가 있다, 충성스럽다라는 것과 비슷하지만 신실하다가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퀄리티를 갖고 있던 어떤 모습이든 탓하지않고 우리에 대한 사랑과 돌봄을 그치지 않습니다. 무한 무한하고 절대적으로 창조주의 아버지로서의 의무에 충실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엔 그런 예가 없어서 알기가 어렵지만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나온 아버지 이미지를 통해 어느 정도는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이지만. 인간의 부모가 아무리 신실해도 하나님의 것에 무한정 미치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무한하게 클 거라고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믿음에 대해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지만 대개는 다 맞습니다. 그러나이 믿음으로 바꾸어 읽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분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 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지만 신실하심이라는 의미를 더하면 좋습니다. 특히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말을 이해할 때 더 유용합니다. ‘From faith to faith 즉 ‘믿음에서 시작해서 믿음으로’라 할 때 대충 이해는 가지만 부족합니다. 그것을 ‘신실하심’이라고 해 봅시다 복음의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지음 받았거늘지 하나님을 반역한 패역한인간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미시며 독생자를 희생하여 이루신 엄청난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은 진실로 신실하십니다. ‘백번 죽어도 마땅한 자들이지만 창조주시며 아버지 되시는 당신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무한히 베푸시는 언약적 사랑 그것이 신실하심입니다. 그리고하나님의 계획과 분부에 따라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성부께 신실하시고 동시에 우리에게도 신실하십니다.
그 구원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우리도 하나님과 예수님께 ‘신실’한 것이며 또 그분을 나날이 깊이 사랑하게 되어가는 것도 신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해 신실하심으로부터 시작되어 마침내 우리의 신실함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즉 예수를 믿게 된 (우리들) 의인은 하나님의 무한한 신실하심의 덕입고, 우리도 그분에게 신실한 삶, 의지하고 순종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말로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게 하신다'(요 16:8)고 했는데, 성령이 우리 마음을 비추셔서 의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느끼게 하심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는 전혀 새롭게 듣는 말이 없습니다. 들은 바가 있지만 새삼스럽게 묵상하고 그 진리의 능력이 인격적으로 우리를 만지고 감동시키고 영원히 아로새겨지게 합시다. 그래서 그 진리의 능력이 우리 사고와 언행심사를 다스리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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