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서른 여섯째 날

By | April 20, 2025

나이 만큼 긴 세월을 교회를 다녔고, 믿음의 큰 어른들에 비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꾸준히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후서 말미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라’고 해서 성경읽기와 독서,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왔습니다. 그래서 아주 가끔이지만 하나님께 꽤 가까이 간 것 같고 뭘 좀 아는것처럼 착각하고 오만해 질때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과거입니다.

인생의 남은 날을 헤아리는 지금의 나이에 서서 나는 비로소 하나님을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에 낙심합니다. 욥이 아마 칠십여 평생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겨왔지만 그때까지의 경험으로는 전혀 알수없는, 존재의 유무조차 확실치 않은 모호한 어둠속에 있게된 것 처럼 너무나 광대하셔서 도대체 크기를 가늠조차할 수 없는 하나님앞에서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기는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의문에 빠졌던것처럼….그렇지만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난 날에도 하나님이 까마득히 멀게 느꼈다가 이전 보다 더 은혜로운 빛이 비춰진적이 있기때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까지 사역했던 위대한 랍비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의 책에서 그는 ‘하나님이여, 나는 감히 하나님을 알기를 원치 않습니다. 다만 경탄 wonder 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다. 참으로 깊은 의미있는 말입니다. 피조물로서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계시 revelation 라고 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보여 주시는 행위가 성경에 있고 또 자연 세계나 역사 속에 있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는 그 맥락을 알지못합니다. 우리는 기록된 계시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나마 알고 특히 우리 구원과 관계되는 진리를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 분’ ‘을 안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어렵고 아마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헤셀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니까 하나님의 그 크고 위대하심, 영광스러움을 보고 그냥 까무라 치듯 경탄한 것으로 만족하겠다, 그렇게 경탄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에 대해서 미주알고주할 알고자 했던 노력도 가상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힘도 없고 다만 넋놓고 앉아서 도대체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광대하시고 위대하신 분이기에 나의 이성과 상상력조차 까마득히 뛰어넘어 버릴 정도로, 나의 이해와 상상의 망원경에 보이지 않는 기막힘과 좌절과 실망을 삼켜버리고 그냥 놀라고 입벌리고 경탄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평소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지만 우주 천체에 관한 것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우주가 너무나 크고 광대해서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고, 그 앞에서 내가 너무나 작아서 먼지처럼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서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찾아 봅니다. 성경에서 종종 예수님이나 하나님이 나타나셨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빛 가운데 거하시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쓰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된다는 말씀을 볼 때 그랬었구나라는 정도로 지나갔었는데, 그것이 어떤 것일까를 요즘은 많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그저 나를 구원하신 분, 내 아버지 나를 보호하시는 분등 여러 가지로 유익을 주는 분으로 믿지만 그 존재가 나의 이성이나 상상력조차 소멸시키는 광대하고 크시고 엄청난 존재라는 것은 사실 즐겁게 생각할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그 분 앞에서 생각이 사라져 버리고 상상력도 무시당해 버리고 어안이 벙벙하고 기절할 것 같으며 경탄에 경탄을 마지않는 그런 상태가 되고 싶습니다. 욥이 지독한 고난 속에 몸서리치다가 막상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창조의 그 광대함과 오묘한 아름다움을 목도하고서 그냥 압도 됬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경탄과 좌절을 맛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