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제19, 20일 – 인류의 연대성

By | April 7, 2025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께서는 천지의 주제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는 분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신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며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 17: 26

    저의 과거 설교 중에 인류의 연대성은 교회에서나 외부 집회 등에서 여러 번 반복한 설교입니다. 그것은 본문이 말하는 대로 인류는 한 가족으로, 한 혈통으로 지원받았다는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아담으로 시작해서 그것을 설명했지만 오늘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합시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한 것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린도후서 15장 45절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 2000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한들 그 분 한 분의 대속의 죽음이,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당신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여기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단히 큰 어떤 원리를 적용시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까? 네, 그렇습니다. 창조주께서는 만물의 원리를 만드셨고 운용하시며 온 우주를 그러한 원리로 움직이고 계십니다. 물리학적인 법칙와 원리, 생물학적 법칙, 화학적인 법칙……예를 들면 만유인력의 법칙, 열역학 1,2,3 법칙 등 모든 우주와 세상의 원리를 만드셨습니다. 그 원리 중 하나가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전 인류)이 아담과 연대되어 있는 아담과 동일한 운명을 지닌 자가 되게하신 것입니다. 그 테두리와 연계를 벗어나래야 벗어날수없습니다. 얄짤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법칙 중의 하나이므로 인간 이성과 논리로 따지고 들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믿음이라는 순종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 인류 전부를 탈퇴할 수 없는 크고 작은 공동체 혹은 연대로 묶어 두십니다. 가장 가깝게 가정을 보세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정에 태어나 낯선? 아버지 어머니의 지질이궁상 운명에 동참합니다.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작은 단위로 시작해서 인간 집단은 연대로 묶여져 있고 그 그룹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야쿠자는 탈퇴하려는 자의 손가락을 베게 합니다. 조폭도 탈퇴자를 용납치 않습니다. 조직의 쓴맛을 아는 자들은 집단에서 도망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모두 아담과 같이 죄인 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의 복음을 듵었고 그분이 대표로 있는 그룹혈통으로 이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옛그룹에 이별을 고하는 일을 ‘회개’라하고 예수님의 나라 속으로 신입하는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들어올때는 맘대로? 들어왔을지 모르나 나가려면 죽음을 각오해야합니다

    아래 말씀 주목합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을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 부터 모세까지 ‘아담과 같은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그러나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이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아은 선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넘쳤느니라. 또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노릇하였은 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런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으로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로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12~21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도 아주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우리의 사상으로 정리 해 둡시다.
    인류는 아담안에 연대된 공동체여서 그 운명을 공유하며 죄에서 구원받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운명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사순절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그런것은 아닙니다. 성탄이나 부활절 같은 절기의 메시지는 일년내내 기억해야하지만 잊어먹기 잘하는 우리를 도와 특별히 절기를 정해두고 소중한 진리를 되새기게 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제20일-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다시 고난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인간이 연대성안에 묶여있음을 밝혀주는 사실중 매우 중요한 것이 인간이 겪는 고난의 문제 입니다. 로마서 2:9 ‘악을 행하는 각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는 말씀대로 각 사람이 자신이 행한 악에 대해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욥의 친구들의 변증의 요지이지요. 그러나 인간이 겪는 고난과 불행의 많은 부분이 개인의 잘못과 일대일의 상관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는 혹은 전혀 알지못하는 사람의 악행, 실수, 잘못에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전쟁에 동원되어 죽은 수천만의 젊은 이들, 나라의 잘못된 통치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 천재지변…. 음주운전피해, 몇세기전 선진국에서 바다에 버린 독극물을 물고기가 먹고 그 물고기를 먹은 사람이 암에 걸린다든지….조상이 저지른 죄에 대한 악을 경험한다든지 헤아릴수없이 많습니다. 그럴때 사람들은 하늘을 우르러 탄식하고 절규합니다. 이런 사실들은 인류가, 거대하여 실감나지 않지만 빠져나가지 못하는 연대속에 있음을 말해줍니다. 인류가 한 혈통이란 말은 터무니없는 박애주의자들의 표현이 아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온 인류가 죄아래있다는 성경의 진리의 뿌리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고난에 치어 죽을것 같을때, 비로소 이웃에 대해, 타인을 바라보며 분명 분리될수없는 연대속에 있음을 반신반의하며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때, 우리는 인간세상의 고난(자기가 자초하지 않은) 을 나누어 지고 있으므로 내가 고난의 더많은 부분을 짊어짐은 타인의 고통을 줄여주는것이 아닌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셨지만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난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 고난의 좀 더 많은 부분을 스스로 짊어짐으로 교회들의 고통을 줄여 주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산술적으로 더하기 빼기로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분명 내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이 세상 누군가는 그만큼 고통을 덜어진다고 유추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데이빗 프라이어 가 쓴 고린도전서 주석에도 그런 말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에 입각해서 우리는 그렇게 추론할 수 있으며 그래서 내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어느 정도는 위로가 될 수 있고 합리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물론 이것을 말하는 저도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항상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의 아득히 저 너머에 있는 목표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허황한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25년 사순절을 지나며 예수께서 짊어지신 고난과 저주가 우리의 것이었다는 것과 그 분과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져야 한다는 로마서 8장 1 7절의 말씀 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아무튼 인간 고난의 문제는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범인들과 철학자들의 꾸준한 사색과 추론의 대상 이었지만 적어도 성경이 말하는 바는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실제 생활이나 우리 신앙의 성숙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2025년 사순절에는이 정도로 얘기 나누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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