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0-12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소망은 죽은 후에 영원이라는 시공, 하나님의 나라안에 예수님의 부활의 몸과 같은 부활의 새 몸을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활의 몸에 대해서는 몇 번 묵상을 나누었는데 오늘은 피조세계의 부활에 대해 나누어 봅시다. 우리가 소망하는 부활에서 몸의 부활뿐만 아니라 피조세계의 부활 즉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다는 귀한 진리를 잘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에 관심이 없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랜 전통속에 그리스도인은 사후천국을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천국은 이 죄많은 세상을 벗어나 저….어디 우주 한곳에 자리잡은 지복한 곳으로 생각하는 수가 많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천국의 장소, 영역성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고 사실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천국이 이금 이 피조세계와 다른 곳에 있는 엄청나게 화려한 곳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첫창조의 세상은 하나님이 지극히 만족하신 곳, 자랑스러운 곳이며 하나님이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잘 돌보고 다스려 하나님의 창조를 계승하라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받은 아담인간이 사단의 편에서며 직무를 유기함으로 인해 피조세계는 창조이래로 내내 타락과 훼손, 엄청난 상처를 입어 이 세상을 살기좋은 곳이라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이기에 타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이 남아있어 때로 세상은 여전히 살만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긴세대동안 흘렸던 무고한 인간의 피, 인간이 인간을 압제하여 발생한 무수한 수탈과 억울함, 인류역사이래 별로 그쳐본 적 없는 전쟁에 끌려가 너무나 어이없이 낙엽처럼 떨어져 죽은 젊은 생명들, 가난, 인권유린,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천재지변과 같이 인간이 겪는 고통시련죽음들의 이야기는 뭔가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울부짖는, 이건 아니다 세상이 변해야 한다는 이상들은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BC와 AD 나눠진 시점에 역사속으로 그의 아들을 보내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되 먼저 복음으로 부르시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주요 왕으로 모셔들이는 백성을 하나님 나라에 불러들입니다. 이들이 거하는 곳은 눈으로 보는 경계가 있거나 정치쳬계를 갖고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사단이 가짜왕으로 군림하는 이 세상에 마치 망명정부처럼 출발해서 지금은 많은 백성이 있지만 여전히 눈으로 보이는 영역은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점에 하나님은 아마 우주적인 대 격변 속에서 역사속에 임재하셔서 첫 창조의 이 세상에 엄청난 변혁을 일으켜 첫 창조의 그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새 창조, 재창조)를 우리에게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세상에는 하나님을 거약하는 무리들,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부정하는 인간들이 판을 치고 떵떵거리고 살지만 이제 새로운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지 않는 곳은 한뼘도 남아있지 않은, 베드로후서의 표현대로 ‘ 하나님의 의가 거하는 새하늘과 새땅을 맞게 됩니다. 우리의 영원한 거처입니다. 계시록 21장은 사도요한이 환상중에 이것을 미리 보는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진 듯, 새로운 천지가 펼쳐집니다. 그 곳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곳이며 인간의 타락으로 피할수없었던 눈물과 사망과 애통이 다시는 없는, 우리가 그리워하던 목자께서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해주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첫창조와 분명한 연속성이 있으며 동시에 너무나 다른 곳입니다. 완전하고 영광스럽고 생명이 넘치는 에덴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피조세계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사순절, 부활절에, 그리고 평소에도 우리의 궁극적 소망인 몸의 부활과 세계의 부활을 참음가운데 기다리고 모색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상상도 하고 즐거워하며 앙망해햐 합니다. 성경은 그곳을 우리의 본향이라고 했습니다. 고향입니다. 떠나온 기억은 없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우리를 땅으로 보내셨으며 우리는 험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내면서 그곳에 대한 향수를 마음껏 누리며 그리워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갈곳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야 말로 지금 여기의 이 세상을 용기있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양보하고 희생하고 내어주며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해주는 추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심이 없었더라도 2025년 사순절부터 부지런히 살피고 믿고 앙망하여 지금 여기서의 삶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수있도록 해봅시다.